소개

원효스님 진영


1) 주소 :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1514-35

2) 전화번호 : 062) 266-0326                       

3) 寺格 :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 末寺


송광사 말사인 원효사는 무등산 북쪽 기슭의 원효계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광주시내에서 약 12㎞거리이며 무등산 집단시설지구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계곡을 건너 의상봉(해발 546.6m)이 마주하고, 그 좌우로는 윤필봉(404.4m), 투구봉(465.2m)과 멀리는 천왕봉(1187m)을 마주하고 있으며, 원효사 뒷편으로는 원효봉(567m)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행정구역은 광주광역시 북구(北區) 무등로(금곡동金谷洞) 무등산(無等山) 원효 계곡에 소재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입니다.

 

원효사의 창건연대는 6세기 초에서 중반 무렵인 신라의 지증왕, 법흥왕 때로 추측될 뿐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원효대사가 산자수려함을 사랑하여 이곳에 머무르면서 암자를 개축한 후부터 원효사·원효암·원효당 등으로 불렸다고 전해오며, 고려 충숙왕 때인 14세기 전반에 당시 이름 있는 승려가 절을 창건하고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사라고 했다고도 하는데, 1980년대에 통일신라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기 때문에 고려시대 창건설화는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가 섭정하면서 불교가 진흥하자 이 원효사에도 많은 승려들이 모여 들었으며, 후일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영규(靈圭)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셨습니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석경(釋經)스님이 다시 중창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육당 최남선은 1925년 봄에 국토순례할때 이곳 원효사를 탐방한 바 있습니다. 그 때 천년고찰로서 원효사의 모습을 『심춘순례』에 다음과 같이 자세히 전하였습니다.

 

  • 법당(法堂)과 범절(凡節)이 당당한 사찰의 풍모를 갖추었다. 본존인 석가여래상이 거룩하시고 사자의 등에 지운 대법고(大法鼓)는 다른 데서는 못 보던 것이다.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영자전(影子殿)에는 정면에 달마로부터 원효(元曉), 청허(淸虛) 내지 서월(瑞月)까지의 대정(大幀)을 걸고 따로 1774년(영조 50)에 담양 서봉사에서 옮겨오신 원효화정(元曉畵幀)을 걸었다. 나한전(羅漢殿), 명부전(冥府殿), 선방(禪房), 칠성각(七星閣) 같은 것은 다 있고, 불상도 볼만하니 그래도 원효의 창사 이래 오랫동안 명찰(名刹)이던 자취가 남아 있다.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는데, 1954년부터 당시 주지 인곡스님과 신도들이 중건에 착수하여 사우 일부를 옛 규모보다 축소하여 복구하였습니다. 1980년 5월 대웅전을 해체 복원하기 위하여 그 터를 정리하는 공사를 하였습니다. 이 공사때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 6점, 고려시대의 철불두상(鐵佛頭像)·고려자기 토기불두(土器佛頭) 및 고려와 조선시대에 만든 기와 와당 도자기 등이 출토되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습니다. 이들 출토 유물 32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절 주변에는 하대석과 옥개석편(屋蓋石片)만 남은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재(石燈材)와,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 3층 석탑,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會雲堂浮屠 : 원효사부도) 등이 산재해 있으며, 부근에 선심폭포·풍암정·장운사·의상대 등이 있습니다. 원효봉 한 기슭에 있는 원효사 동부도는 (지방유형문화재 제7호) 현존하는 부도중 조각기법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사면에 동물모양의 해학적 모습이 특이합니다.

 

1980년 법타스님이 대웅전, 요사채, 명부전을 신축복원하였고, 1989년부터 현지스님에 의해 성산각, 개산조당, 요사, 종각, 누각 등의 건물이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8년 현재 주요 전각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 성산각, 지장전과 개산조당(開山祖堂), 무등선원, 요사채, 회암루 등이 있습니다. 이중 대웅전은 전형적인 정면 3칸, 측면2칸의 다포양식이며, 팔작지붕입니다. 개산조당에는 원효사 범종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원효계곡의 원효사 바로 아래에는 관음암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관음암은 원효사에 속한 암자였으나, 1975년 성호(性昊)스님에 의해 별개의 사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관음암의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극락보전, 요사채가 있습니다. 대웅전 좌측의 자연암반에 새겨진 미륵불이 있고 경내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있는데, 이들은 근래에 부가된 것들입니다. 극락보전 촤측에는 자승당 단암선사(慈昇堂 檀庵禪師)의 사리탑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관음암과 원효사로 올라가는 도로변에는 어사 민달용(閔達鏞)과 관련된 어사바위가, 그리고 이에 대한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무등산 원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 말사로서, 원효봉을 뒤로하고 원효계곡을 아래로, 무등산 정상 서석대를 바라보는 수려한 경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원효대사는 661년(문무왕 1년)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어느날 한 무덤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다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던 원효대사는 6세기 초에서 중반 무렵인 신라의 지증왕, 법흥왕 때, 산자수려함을 사랑하여 이곳에 머무르면서 수행하셨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은 그후 원효사·원효암·원효당 등으로 불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