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문화재

시지정문화재 원효사 동부도,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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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동부도(元曉寺東浮屠), 고려시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부도는 원효사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을 마련한 후,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바닥과 기단의 일부를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탑신의 몸돌은 너비보다 높이가 길며 약한 배흘림을 하고 있다. 

지나치게 큰 지붕돌은 가득 새겨진 조각들로 인해 더욱 무거워 보인다. 윗면에는 

기왓골과 여덟 모서리선이 뚜렷하고, 밑면에는 2중의 서까래를 조각하여 겹처마를 

표현하고 있으며, 여덟 귀퉁이에는 꽃조각 대신 용, 다람쥐, 비둘기, 거북 등의 동물들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은 고려 후기에 나타나는 특이한 양식이다.


통일신라의 8각 양식을 따르면서도, 받침부분 일부에서 4각을 보이고 있고, 

지붕돌의 동물조각 등이 전형에서 벗어나 있어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기단은 아래받침돌 윗면에 연꽃조각을 두르고, 옆면의 네 모서리에 숫사자와 암사자를 

교대로 배치하였다. 가운데받침돌은 4면에 연꽃을 새기고, 네 모서리마다 사자와 용을 

각각 암수로 나누어 조각하였으며, 윗받침돌은 옆면에 연꽃을 돌려 새겼는데 너무 얕아서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다.





원효사소장 만수사범종(元曉寺所藏萬壽寺梵鍾), 조선시대, 광주유형문화재 제15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총고 86㎝․구경 63㎝인데 용뉴부(龍鈕部)는 20㎝, 

종신부는 66㎝인 범종이다.

 

종을 매다는 부분인 용뉴는 각각 여의주을 물고 있는 2마리의 용으로 장식하였는데, 

용머리 위에도 불꽃에 휩싸인 1개의 여의주을 장식하였다. 용두의 표현이나 천판에 드리운 

발의 조각기법은 약간 경직되어 있다. 또한 소리를 내는 음관으로써 용동시설 대신 

천판상부에 원형의 음공(직경 2㎝)을 마련하였다.





종 위쪽 띠에는 범자(고대 인도어) 문양 띠를 둘렀으며, 띠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이 동일선상에 번갈아 배치되었다. 유곽과 4구의 보살상 사이에 왕실의 

안녕을 비는 글이 새겼다. 유곽 안에는 연꽃무늬의 바탕에 연봉오리 모양의 9개의 유두가 

도드라지게 새겨 있다.



 

보살입상과 유곽 아래에는 양각의 명문대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

강희사십구년 경인사월일 추월산 만수사 대종수성야”라고 적혀있어,  조선 숙종36년

(1710)에 조성되었으며, 원래는 담양 추월산 만수사의 대종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양각의 명문대 아래에는 “단기 4287년 갑오칠월일”이란 음각명과 함께 1954년 

원효사 대웅전을 중수할 때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 음각되어 있다.

 

이 종은 몸체 높이와 입 지름의 비율이 거의 1:1로 전형적인 조선종의 비율을 지니고 있으나, 

용뉴 부위의 표현이 경직되고 음통대신 음구멍을 넣는 등 양식의 퇴화가 엿 보인다. 

또 당좌 및 하대의 문양이 없어지는 등 조선후기 범종의 특징이 나타나는 점에서, 범종의 

양식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현재까지 전남지방에서 발견된 범종은 모두 20기가 있는데, 그 중 광주광역시에 소재하는 

것은 유일하게 이 원효사 범종 뿐이다.


이 범종은 그동안 대웅전 내에 보관되어 오다가 항구적인 보존을 위해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대체하고, 현재는 개산조 전각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원효사 출토유물(元曉寺出土遺物) 32점, 통일신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원효가 머물었다는 광주 무등산에 있는 원효사 대웅전을 

신축하던 중 발견된 유물들이다. 수 백점이 발굴되었으나 그 중 금동·청동불상 12점, 

소조불상 18점, 청동거울 2점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근래에 8∼9세기의 해무리굽 청자 

조각이 발견되어, 이 절의 창건연대를 높이는 단서가 되었으며,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파편들이 다수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금동·청동불상들은 대부분 부식상태가 심하여, 다른 불상이 가지고 있는 몸 뒤의 광채 즉, 

광배와 받침인 좌대를 잃어 버렸다. 불상들은 10㎝ 내외의 서 있는 것으로,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만들었다. 보살상과 동자 2점을 제외한 모든 불상이 손바닥을 앞으로 하고 

왼쪽은 손가락을 위로, 오른쪽은 아래로 향하고 있다.

 

원효사의 발굴유물 대부분이 진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불상들로 100여점이 넘는다. 

그 가운데 비교적 원래 모습에 가까운 18점을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머리모양 수법이 비슷하다. 발굴 당시의 조각들을 모아 복원한 결과 머리높이 

10.5㎝, 상체 10㎝, 하체 6.5㎝로 전체 높이 27㎝ 가량의 불상들로 밝혀졌다. 

이들 소조불의 발견으로 원래 원효사에 천불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거울 중 2마리 용이 새겨진 거울은 조각이 섬세하고 정교하다. 중심에는 2겹으로 된 

연꽃을 새겼고, 그 밖으로 2마리의 용을, 외곽에는 구름무늬를 새겼다. 가운데 있는 2마리 

용은 서로 반대 방향에서 꿈틀 거리는 모습이며, 예리한 발톱을 가지고 있고 여의주로 

보이는 2개의 구슬이 돋아나게 새겼다. 또 다른 백색의 거울은 무늬가 없으며 별 특징이 

없다. 이 2점의 거울은 고려시대 공예 조각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